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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은 잠 못 이루고

by 그것_ 2025. 10. 15.

나는 오늘도 야심한 밤에 홀로 깨어 중얼거리는 것이다. 모기란 생명체는 상도덕이 없어 멸종할 것이라고. 3일 내내 아니 어쩌면 이번달 내내 개빡센 업무가 물려있는 직장인을 3시부터 온몸 구석구석 물어서 잠을 가물가물하게 깨우더니 기어코 귓가에 방명록을 남기고 갔다. 이미 30년 되는 세월동안 나는 평생을 모기에 시달려왔다 글쎄, 내 피가 그들에게 암보르시아라도 되는 걸까. 모든 모기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선택했다. 덕분에 남들 못지않은 예민함을 지녀 모기만 보면 말벌 아저씨마냥 달려들게 되었다. 어쩐지 오늘 자기 전 낌새가 이상했다. 어제 한 놈을 미처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자취방에서 혼자 자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리고 다음날 물려있는 일이 많아 선풍기 바람을 쐬며 자는 것으로 대응했다.

현재 비물질, 그러니까 세간에선 귀신이라 부르는 것들이 우리집에 들어앉아 뻐댕기고 있다. 월세도 쳐 안내는 것들이 집주인도 아닌 고작 세입자인 나에게 지금 뻐큐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오면 음기가 강해진다나? 요즘 여기도 영 상황이 좋지 않아 애인집에 대피하듯 살고 있다. 이 미친놈들은 돌아가면서 나에게 뻐큐를 시전한다. 한 놈은 내가 친절히 집주인 집까지 알려주고 친구의 힘을 빌려 줄다리기도 했다. 매주 팥이랑 소금도 친절히 사비를 들여 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는 여기 있고 싶으니까 꺼지란다. 비물질다운 싸가지다. 다른 한 놈은 오늘 하루만 나를 5번 물어뜯었다. 이뿐이랴? 평소엔 나를 무느라 건드리지도 않던 애인도 곳곳에 물린 듯 했다. 둘이 잠을 뒤척이며 결국 지금까지에 이르렀다.

차라리 약속이 있는 목, 금에 그러던가, 더 편히 잘 수 있는 주말에 그랬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그나마 미리 일을 땡길 수 있는 오늘 이러니까 더더욱 부아가 치밀어오르는 것이다. 나는 그들과 다르게 은혜를 안다. 그리고 세상살이 돌아가는 것을 인간 기준으로 얼추 알고 있다. 이 야심한 밤에, 직장인 둘의 다음 활동이 걸려있는 상황에서 불을 키고 미니미 흡혈귀놈들이라도 잡겠다고 날뛰지 않을 상황 판단력은 있다는 것이다.

그런 내가 선택한 건 기도였다.

종교는 없다. 특별히 유감은 있다. 종교에 대한 거부감도 크다. 그래서 세 분을 모셨다.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그들을 향해 양 손을 꼭 쥐고, 서러움을 담아 민원을 넣었다. 저 미친놈들 중 하나는 제발 없애달라고. 어쩌면 고작 계절 하나 해프닝 하나일테지만 나의 세계에선 그것조차 크다고. 물론 지금은 평온?을 되찾아 이정도만 쓰지만 사실 전날 오전 버스에서 본 진상과 나는 다름이 없었다. 딱 하나 달랐다. 버스기사님은 진상의 말을 듣지 않았지만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은 내 말을 들어주신 건지 얼마 안되어 애인이 모기를 잡았다.

달아난 잠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 놈은 덤불숲 안의 맹수처럼 회사에서 나를 호시탐탐 노릴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잠이 지금은 오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신들이여 땡큐입니다!를 한 번 외치고 퀭한 눈으로 자판만 두드리는 것이 다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결국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나를 깨운 건 혹시 몰라 맞춰둔 알람이 아니었다. 모기놈의 방명록 소리였다. 아. 그제서야 깨달았다. 당시 애인의 손바닥이 깔끔했다. 그래도 푹 잤으니 그나마 다행일까? 어쩐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