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이다.
최근 이슈.
나의 모든 취미가 자본주의로 더럽혀지고 오로지 야구만 보게 되었다. 사실 자본주의에 절은 걸 싫어하는 게 아니다. 자본 맛을 보고 발전은 커녕 지금 상태에서 더 질 나빠지는 것이 싫은 것이다. 고로 야구는 이미 글러 먹어서 괜찮다고 생각한다. 요근래 젊은 여성 들어온다고 이것저것 콜라보만들고 조금 귀엽게 만든 후 라팍 1평 값을 요구하는 게 짜증날 뿐이지. 나의 잃어버린 취미들에 비해 이 정도면 양반이다.
연극/뮤지컬 -> 대극장 1층이면 한남자이를 살 수 있음
책 -> 이건 내 잘못이 크다. 나의 마음가짐이 가장 큰 장벽이다...
전시 ->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전시 대상이 강제 변경된다. 볼 게 없다. 근데 가격도 올랐다.
케팝 -> 뉴진스 돌려내
고로 유튜브만 전전하다가, 여전히 사람이 영상에 나오면 인상 찌푸리고 끄는 걸 반복하며 완벽한 멘헤라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마침 좋은 전시가 올해 많이 열리더라. 요즘은 연차를 쓰고...전시 오픈런을 뛴다...(이에 대해 많은 불만을 쏟아낼 수 있지만, 지금 당장의 내용에만 집중하겠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작품을 보고, 같이 본 친구랑 전시 이야기를 하는 게 나의 낙이다. 최근에는 한국 근현대 작품들이 가득히 찬 미술관도 돌아보고,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를 보며 취향을 재정의하기도 했다. 지금은 '렘브란트부터 고야까지'를 기다리고 있고, 곧 대전에 앤디워홀 전시를 보러 갈 예정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나는 항상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작가와 관객이 작품을 매개로 소통하는 행위다.
그러니까 xx 소통을 하라는 거다.
뭐 대단한 게 아니다. 그냥 현실에 유리된 작품을 내고 이해받길 원하지 말라는 거다.
지금 연예인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인데, 우리는 결국 사회 구성원이다. 사회를 알아야한다. 그에 맞춰 행동하는 게 사회성이다. 나도 사회성이 상당히 없는 편이지만, 적어도 남태령에서 추위에 떠는 사람들을 보며 호화로운 파티에서, 위선적이라도 그 사람들을 향한 지지의 한 마디 하고, 유방암 캠페인을 가게된다면 적어도 그 행사의 취지는 알고 행동하고, 또 직장인의 삶을, 천만원의 가치를 알고 그에 맞춰 떠들라는 말이다. 상대의 사랑을 원한다면 상대의 세상을 알아야하는 것이 기본적인 원리다. 그런데 그걸 못하고 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놈들이.
작가는 보통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들이 한다. 이 세상이 왜 이러냐, 엉 울면서 붓을 잡고, 자존심이 상해 귀를 자르기도 하고, 나는 그래도 이 빛을 믿어보련다, 하며 여명을 그리기도 한다. 그 의지와 열망을 관객은 읽고 본인을 대입한다. 결국 작품이란, 그 사회를 살아가는 누군가가 모르는 이에게 한 마디를 툭, 던지는 것이다. 그러니 작품의 기본 전제에는 공감이 깔려야 한다. 그것이 요구이든 질문이든 간에 말이다. 그 방식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나는 그래서 기본적으로 작가의 생애를 따라가는 전시들을 좋아한다. 서사가 중요하다. 그 서사가 지루해도 상관없다. 저항적인 의미가 강하고 어떤 의미로는 발악하는 순간일지라도 좋다. 이 작가가 왜 그런 마음으로 그렸는 지 알 수 있어서 좋다. 이중섭의 그림을 보면 가족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 좋고, 모네의 그림을 보면 그 찰나의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웠을 지, 내가 봤던 풍경이 생각나서 좋다. 작가가 어떤 걸 보여주고 싶은 지 알 수 있는 그림들이 좋다. 하지만 나는 역시 저항하는 그림들이 좋다. 정신병원에서도 본인을 놓지 않으려고 무수히 꽃을 그리고, 힘든 와중에도 자신의 조카가 태어난 걸 축하하기 위해 아몬드 나무를 그리는 고흐의 그림들을 사랑한다.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잘 쓰지도 않던 밝은 색을 사용해서 그린 뭉크의 여명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희생자들을 기록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 고야에게 찬사를 보낸다.
근데 그냥 개념적 언어 띡.띡 붙혀놓고, 돈 많은 집 어쩌고들이 인~간~의 본질~! 욕구! 열망! 삶에 대한 회한! 인생을 돌이켜보며! 이 꼬라지 이 난리를 염.병으로 쳐 하는 작품들이 싫다. 이번에 들어올 그 상어 작품도 그렇고(아니 굳이 상어를 괴롭혀야하겠는가? 이미 지구온난화로 고생하고 있는 애들이다) 대충 나름대로의 생각을 요리저리 덧붙혀놓고 관객에 던져놓는 행위가 참 건방지다 생각한다. 명조체로 몇 글자 띡, 올려지면 그것이 본인의 간지임을 생각하는 부류가 싫다. 예술은 부에 분리될 수 없다. 그러면 저항을 하라! 부자놈들이 이미 가진 건 많으면서 욕심은 드글거려가지고 다 해 쳐먹으려는 꼴이 아주 눈꼴사납기 그지없다.
이전에 제임스 터렐 작품을 보러 뮤지엄 산을 갔다. 상당히 기대를 한 공간이었으나...글쎄, 나는 그 공간이 왜 그렇게 질식할 것 같았을까. 의미를 알 수 없는 대형 조각 몇 개, 자사를 홍보하는 전시 몇 개, 본인의 내면에만 집중하도록 설계된 그 구조물들에서 외려 위선이 느껴졌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 만원이나 하면서 눈 앞에 가득차는 풍경은 오로지 골프장 뿐인 그 공간이 나는 너무 끔찍하도록 싫었다. 어울림 따위는 없고 소통은 전무한 사탕 껍데기를 보는 듯 했다. 제임스 터렐의 전시는 오히려 괜찮아서, 취향을 넘는 재능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본에 대한 예술의 모순도 함께 말이다. 그 때부터 나는 현대 예술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작가들은 과연 소통을 하고 싶긴 했을까? 스스로의 세상에 갇혀 나약한 발악을 하는 것이 아닐까?
23년도 쯤이었나, 서울 국립 미술관을 줄창 드나들면서 제일 좋았던 것들은 결국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혹은 의미를 추론할 수 있었던 작품들이었다. 나는 그저 박물관의 먼지를 끌어모아 네모난 박스 큐브를 보여 주고, 죽은 이, 관찰하는 이, 살아있는 이의 시점 각각의 시점을 보여주는 전시관이 좋았다. 생각지 못한 것을 생각해보게 해서 그랬던 것일 지 모르겠다. 퀴어의 역사와 저항을 이야기하던 한 관은 반절은 이해를 잘 하지 못했으나, 적혀있는 문장들을 보며 오히려 감정이 뼈저리게 느껴져 회피하려 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런 식으로 다녀와본 모든 현대 예술 전시를 훑어본다.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3개월 동안 한국의 누룩이라는 것을 이용해 물건이 썩어가는 것을 체험하는 전시, DMZ를 다녀온 사람의 설명만 통해 가상현실을 재구성하여 일치를 이야기하는 내용의 영상, 머리카락을 막대기에 동매고, 그에 매달려 악으로 버티다가 머리카락이 드디어 가위로 잘리는 순간 떨어지면서 거북이의 등을 부수는 작품 등...사실 나는 현대 예술을 완벽하게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명제가 간간히 입증되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들에 대해 산에서 느꼈던 모순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하지만, 뮤지엄 산의 그 작품들과 어떤 것이 분명히 달랐음은 알 수 있다. 다시 한 번 산의 작품들에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가? 듣는 이가 말하는 이의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이 곧 불통이고 단절이다.
반대로 의미를 알기에 질식할 것 같은 작품들이 있다. 쓰레기들은 여기서 다루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다녀온 한국의 근현대 미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역사책에서 내도록 보고 현장에서 울게된 시대의 작품들은 아무래도 답답하더라. 작품의 문제가 아니다. 그 때의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숨이 막히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삶에 근접하면 거리감을 느낀다는 것을 최근에 느끼게 되었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며, 현재 우리와 별 다르지 않는 이야기들을 하더라. 여대 취업률 최저인 이유는 사회적 구조와 편견 때문이고 등등, 변하지 않는 현실의 막막함과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다시 느껴져 전시관에서 내 삶을 느끼게 된다. 그게 참 거리감이 생기더라. 현대 미술, 특히 한국이 나에게 어려운 이유는 어쩌면 분리를 느끼지 못하여 그러려나,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은 어쩔 수 없이 자본의 영향을 받는다. 이 모순 위에서 사람들은 고뇌한다. 현대 미술은 특히 그러한 지점이 잘 보이기에, 그리고 그 사회에 대한 생생한 감정을 내가 느낄 수 있기에 더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대로 전시는 계속 다니겠지만 이 의문들을 계속 품고 다닐 것이다. 이건 자의도 타의도 아니다. 이렇게 들고 다니다보면 언젠간 나름의 답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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