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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블완

인생 이벤트 과다 사건

by 그것_ 2024.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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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간만에 나왔더니 이벤트가 연달아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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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신히 눈을 떴다. 이럴 때는 폰을 보는 것이 좋다. 전자파가 1차로 눈에 때려 박히고, 비관과 비탄에 가득찬 뉴스들이 2차로 뇌에 때려 박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친구의 절규가 화면에 크게 박혀있었다. 내용인 즉슨 이랬다. 중요한 무언가가 자신의 집에 있는데, 영 혼자 갔다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침 내가 지금 출발하면 딱 정해진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금방 갔다가 집에 갈 생각으로 씻지도 않고 비척비척 문을 나섰다. 무사히 친구의 퀘스트를 마무리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오늘이 평탄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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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에 간 자취방은 나를 전혀 반기지 않았다. 도어락의 낯선 소리와 함께 문조차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친...욕짓거리를 입에 머금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아무리 과거를 되짚어봐도 도어락은 내게 자신의 문제를 단 한번도 알리지 않았다. 만일 방전 시 배터리를 문에 갖다대면 충전되어 열릴 수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낯선 소리가 과연 방전일 지 의문이 들었다. 곧바로 집주인에게 전화했다. 근처에 사는데다, 분명 마스터키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키가 있기는 한데, 내가 전라도에 있네. 어떡하지?"

 

 그걸 왜 저한테 물으세요. 되묻고 싶었지만 앞이 막막했다. 나는 훌륭한 세균의 서식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씻고 나오자마자 출발하면 사촌 오빠 약속에 정시에 도착할 수 있겠다라는 희망이 깨졌다. 집주인의 조언으로 배터리부터 사러 갔다. 당부대로 바로 갈아끼울 배터리도 함께, 총 2종류의 배터리를 소중히 안고 왔다. 몸이 처지지만 지나가는 강아지와 아이들에게 웃음을 지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충전 때문에 10분까지도 걸린댔는데, 9V 배터리를 갖다대자마자 도어락은 기분이 좋아졌고 나에게 집을 안내했다. 눈 뜬 직후의 2시간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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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문을 나서려는데, 인센스 홀더가 바닥에 떨어져 깨져버렸다. 오...여느 영화의 불길한 징조처럼 말이다. 하지만 검은 고양이가 행운을 부르듯, 이 이후에는 즐거운 일만 있었다. 점심으로는 구로디지털단지역의 동해반점을 갔다. 사실 간짜장이 근래 끌려서도 있지만, 내 감이 말하고 있었다. 여기는 분명 맛있을 거라고.

 

좌측, 동해반점의 천장과 바깥에 있던 붉은 등, 오래된 느낌이 물씬 난다. 우측, 시켰던 간짜장 사진. 면 위에 바로 큼지막하게 고기와 양파가 썰려 버무려진 간짜장 소스가 올려져있고, 완두콩 3개로 장식이 되어있다.

 

 역시 nn년동안 맛있는 것만 쫓아다닌 나의 촉은 틀리지 않았다. 찾아보니 50년 된 노포라고 한다. 그만치 세월이 베인 건물이 있었다. 지나간 시간이 되려 내부를 멋스럽게 만들었다. 채도가 낮고 분주한 내부, 단단하게 자리 잡은 식탁과 의자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진심이 베인 것들은 언제든 반갑다.

 간짜장은 불향이 짙게 베여있었고 양파는 아삭했다. 고기도 큼지막해서 베어 물었을 때 잘 조리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야끼만두를 같이 시켰었는데, 특이하게도 소금에 후추를 잔뜩 뿌려 같이 주셨다. 찍어 먹으니 오히려 지금까지 먹은 간장 소스보다 덜 부담스러웠다. 덴뿌라가 그렇게 유명하다던데, 다음에는 먹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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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목적지인 대림 차랑! 국제 차 박람회에서 정산소홍 아이스크림을 먹은 후, 다시 그리워질 때 즈음 한국에 지점을 냈다. 체질 때문에 녹차와 홍차는 꺼리는 편이지만 아이스크림에 베인 솔향이 좋아서 친구들과 한 번 가게를 갔었더랜다. 꽤 고풍스러운 신식 내부와 신경 쓴 찻잔이 마음에 들었다. 다행히 대홍포도 있었다. 호전다실에서 청차의 역사에 대해 들은 이후, 이 대홍포가 뇌리에 꽂혔다. 차 나무에도 세대가 있다는 사실과 이에 얽힌 역사 이야기(보스턴 차 사건 등), 그리고 위상을 보여주는 이름까지. 차랑은 내가 가장 쉽게 대홍포를 먹을 수 있는 장소이다. 카페인 하이도 오지 않고 대홍포의 맛이 부담스럽지 않아 좋아한다. 가족은 닮는 것일까, 사촌 오빠도 대홍포를 더 좋아했다.

 

  정산소홍 본차는 향이 독특했다. 확 들어오는 솔향, 산미 있는 맛, 그리고 더 먹으면 죽어버릴 거라고 경고하는 몸까지 총 세 가지가 조화를 이뤘다.  이 솔향이 나는 왜 이렇게 좋을까? 그냥 밀크티는 선호하지 않는다. 역시 몸의 협박 때문이다. 홍차는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기 위해 일생에 단 한번, 선생님께 아프다는 핑계로 조퇴할 때도 도움을 주었다. 진짜 몸이 아파지니 선생님께서 의심할 겨를도 없을 정도였으니까. 그런 홍차를 일정량 넣은 밀크티? 내 몸에게는 살해 협박에서 공갈 협박으로 바뀔 뿐이었다. 그런데 정산소홍 아이스크림은 끝에 솔향으로 나를 달랜다. 홍차군...싶다가도 끝에 가벼운 솔향이 올라옴으로써 맛의 독특함이 가중된다. 그렇게 계속 퍼먹게 되는 것이다. 머리가 멍해질 때까지 말이다. 말하다보니 뭐 먹지 말아야할 걸 먹은 거 같은데, 나 빼곤 모두 멀쩡히 잘 먹는 아이스크림이다.

 

 중간에 황당한 일이 있었다. 어떤 분이 가게 문을 여셨다. 손님 연령층이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 분은 가셨다. 문만 열고. 나와 같이 사장님과 다른 좌석의 손님 모두 물음표가 떴다. 사장님은 들어와도 된다고 소리치셨고, 곧장 문으로 넘어가니 이미 사라지신 지 오래 되었다. 왜 문을 열고 그냥 가셨을까? 가게의 환기를 시키고 싶으셨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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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렇게 하면 이제 오후 3시가 된다. 참 동적인 일정이다.

 

유달리 겁이 없던 고등어 무늬 새끼 고양이. 좌측 이미지는 당차게 앞으로 다가오는 모습이고, 우측 이미지는 위에서 본 모습이다.

 

 이전에 길에서 아깽이를 만난 적이 있었다(상세한 내용은 다음으로 넘기겠다. 이미 이 글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다). 이 아이의 집을 찾아주는 대소동 도중 근처 카페 사장님 한 분과 근처 주민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주민분의 강아지를 만나게 되었다! 이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모르는 사람이 강아지 이름을 안다는 것은 누구에겐 공포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집사님께 차분히 설명 드렸다. 카페 인스타에서 본 적이 있었고, 다른 집사님께서 강아지를 알려주셨다며...다행히 이해해주셨고 카페의 다른 사장님과도 말을 트게 되었다.

 

 하...위치가 특정될 것이 우려되어 말을 줄이지만,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강아지였다. 최고의 강아지. 최고의 천사. 그리고 집사님이 너무너무 감사하게도 카이막을 사주셨다. 감사하다는 표시로 호다닥 강아지의 그림을 그려드렸다. 그리고 이전에 만난 분께 카톡으로 오늘 찍은 강아지 사진과 그림을 전달 드렸다. 두 분 다 마음에 드시는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래, 이 맛으로 그림 그리지.

 

 이실직고 하자면 내가 사는 동네는 아니다. 어떤 연유로 자주 오는 동네다. 거의 집보다 오래 있는 곳. 그리고 이 곳에서 동네 주민들과 많은 인사를 나눴다. 참 인생이 재밌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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