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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로써 살면서 꼭 필요한 능력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양 조절이요, 둘 째는 몇 끼니를 똑같이 떼워도 물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 나 둘 다 못 한다. 이전에 비건 감자탕 레시피보고 홀려서 말린 시래기를 덥썩 샀는데, 물에 넣고 불려보니 족히 6인분은 나왔다. 소분해서 친구 주고 해결한 사례가 있었다. 그것 뿐이랴, 본가에서 요리를 하는 데에 항상 초점이 맞춰져 기본적으로 4인분 분량을 만든다. 이제 여기에, 한 명당 1인분 씩이면 배가 차나! 하는 한국인의 마음가짐과 함께.
자, 방금 비슷한 일이 또 벌어졌다. 마침 간 마트에서 시금치 한 단에 2천원이라는 방송이 들렸다. 시금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마침 크림 파스타가 먹고 싶었기 때문에 더욱 좋은 기회였다. 그래, 어차피 크림 소스도 2인분인데, 시금치랑 느타리를 사 가자. 그럼 내일까지 다 먹겠지. 아마 여기에서 여러분은 눈치 챘듯이, 시금치 한 단은 모조리 나물로 하지 않는 이상 2인분이 될 수 없다. 나는 이 사실을 시금치를 손질하며 깨달았다. 동공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많이 파스타에 녹여 낸다 하더라도 반 단 가량이 남는다. 와중에 농부 분이 어찌나 잘 키우셨는지, 아주 커다랗고 파릇파릇했다. 어쩌면 면 대신 시금치를 후루룩 먹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게 참...다행인지 불행인지, 소금을 찾던 중에 당면 두 봉지를 찾았다. 각각 8인분이었다. 유통기한을 보니 얼마 남지 않았다. 마침 시금치도 남았겠다...비빔당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 이제 첫 번째 능력에 실패했으니 두 번째 능력을 기를 때가 왔다. 평균 하루에 두 끼니를 먹는다. 중간에 약속 등등을 모두 고려했을 때...다음달 월요일까지 당면만 먹고 살면 된다. 나당전쟁, 그러니까 나와 당면 사이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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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성을 모으고 있다.
1. 샹궈 시켜서 당면 삶은 것 볶아 먹기
2. 돼지국밥 배달 시켜서 당면 넣어 먹기
3. 찜닭 소스에 당면 넣어 먹기
4. 마라크림당면
5. 비빔당면
6. 잡채
7. 크림당면
8. 냉잡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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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봤다.
총 30인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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