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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재밌지 않냐는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일생일대 노잼의 하루를 마주했다.
별 일은 아니고...그냥 정말 별 일이 없다. 그저 하루종일 기분이 안 좋을 뿐이다. 일어나서 지금까지,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느즈막한 아점을 먹고 저녁을 먹은 후 야식을 고대하는 이 순간까지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오늘 해치워야 할 일도 둘이나 있다.
간신히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카페를 오긴 했건만...영 풀리지 않아 이 기분을 글로나마 배설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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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 한번도, 내가,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의심해본 적조차 없다. 운이 좋게 몸은 좀 건강하게 타고 났건만 1년에 한번은 스트레스성 위염을 앓는다. 주기적으로 병원을 여러 곳 돌아다녀야할 때도 있다. 나를 처음 보는 의사들은 지치고 노련한 기색으로 말한다. "스트레스 조심하시고요." 이쯤되니 되묻고 싶다. "스트레스가 없는 곳도 있나요?" 아마 그들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되려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온순한 한 환자가 되어, 네. 라는 짧은 응답 후 약국을 나선 후에야 한숨을 쉬는 것 뿐이다.
유달리 예민한 기질을 스스로 알아차린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인 거 같다. 중학교 때는 기억이 안난다. 고등학교 내내 표정이 좋지 못했고, 괜한 걸로 친구들을 트집잡고 싸웠더랜다(그 친구들이랑은 아직도 잘 지내고 있다). 대학교 때 최정상을 찍은 줄 알았더니 왠걸, 요 근래 슬슬 다시 그 최고점을 향해가고 있다. 이게 항상 사람에 치여서 그런지, 요즘 보는 것들이 하나같이 삿된 것들이라 그런지, 겨울이라 그런지, 그냥 백수여서 그런지, 전공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져가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모두 다 일 것이다. 항상 그래왔듯이.
도시에 떨어진 나에게 절대 떨어지면 안되는 것은 노이즈 캔슬링이다. 노래는 듣지 않는다. 청각적 요소를 줄이는 것이다. 나는 큰 소리가 정말 싫다. 귀에 때려 박히는 목소리는 공연장 외에선 만나고 싶지 않다. 지하철 소리는 어찌하여 그리 큰 것인지. 나는 정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항상 화나있다. 실제로 머리를 계속 헝클어트리는 바람에게 허공의 화를 낸 적도 많다. 멀찍이 있더라도 내가 싫어하는 요소가 눈에 밟히기라도 하면 내 몸은 초긴장 상태에 들어간다. 어떻게 거절하고 피할 지, 더 나아가서 싫은 티를 어떻게 내야할 지 고민하게 된다. 정말 사회생활에 쥐약인 성격이다. 지금까지는 소심한 성격 탓에 그래도 사회적 진상이 되지 않은 상태로 살고 있지만, 후에는 결국 피해망상에 가득 절은 사람이 될 지 우려된다. 동정 혹은 적의만 받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모두가 각자의 삶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을 안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 더 다정해져야하고, 다정함은 곧 코어에서 오기 때문에 운동이 필요한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던 운동은 땅 한 뙤라도 아껴서 주차장이든 건물이든 간에 어딘가 투자가 되어야하는 이 곳에서는 사치이다. 그 외에는 땀이 나는 게 싫고, 재정적으로도 애매하다. 진정으로 지금은 피크민 블룸만이 내 근육을 먹여 살리고 있다.
예민하기에 내 예술적 기질은 꽤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예민해서 사소한 것도 발견할 수 있고, 단순히 지는 저녁놀에 건물 유리창이 분홍색으로 빛나는 것에 감격하고 반짝이는 한강의 윤슬에 감탄할 수 있다. 고흐의 작품과 테오를 향한 편지들을 보면서 느꼈다. 예술은 결국 어떤 감정의 통풍구구나, 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행복해질 순간을 더 빠르게 포착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이 가끔은 버겁다. 그래, 지금 이 순간 말이다. 이유 모를 기분 나쁨에 사로잡힌 이 순간 말이다. 카페라떼를 홀짝이며 이력서를 회피하는 동안 쓴 이 기분 나쁜 글은 티스토리 서버실의 모든 하드웨어가 사라질 때까지 DB에 끈덕지게 남을 것이다. 그걸 지금 개의치 않고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이미 어떤 회로가 지금 고장나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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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기분이 꼬롬하더라.
협찬인 줄 알았던 것이 알고보니 사이비 신종 수법이었다.
분노하고 나니 기분이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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